0427 三國史記(1145) ❽平壤
移都平壤² 도읍을 평양으로 옮겼다. ▐ 고려는 342년에 모용선비의 침공을 받아 도읍인 丸都城이 파괴되자 이듬해에 도읍을 平壤²東 黄城으로 옮긴 바 있다. 그러나 371년에 백제가 平壤²城에 침공해오고 이를 막다 고구원왕이 죽자 도읍을 다시 國內로 옮겼다. 399년에는 광개토왕이 平穰²에 행차해 내려갔다가 신라가 보낸 사신을 만나기도 했다. 따라서 여기에 나오는 平壤은 그러한 역사의 맥락에서 볼 때 대동강 유역에 있는 平穰²이라고 보아야 한다.
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 1856~1861 東輿圖 @大城
▐ 586년에 도읍을 옮긴 長安城을 평양 동북쪽에 있는 大城으로 보았다.
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 1884 地圖 @朝天石
▐ 제왕운기(1287)에 추모왕 이야기가 얽힌 바위섬으로 나오는 朝天石이 표시되어 있다. @조천석
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 1834 靑邱圖
247년에 도읍을 옮긴 平壤城을 지금의 평양성으로 보았고, 343년에 도읍을 옮긴 平壤東黄城을 평양 목멱산으로 보았으며, 586년에 도읍을 옮긴 長安城을 지금의 대성산성으로 보았다. @平壤 @黄城 @황성 @長安城 @장안성
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 1834 靑邱圖 @九龍山
▐ 九龍山에 있는 옛 성을 586년에 도읍을 옮긴 長安城으로 보았다. @구룡산
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 1834 靑邱圖 @黄城 @木覔山
▐ 黄城이 서경 동쪽의 木覔山 가운데에 있다는 삼국사기(1145)의 기록과 일치한다. @황성 @목멱산
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 1834 靑邱圖 @東明王墓
▐ 龍山寺라는 절이 옆에 있어 東明聖王을 龍山에 묻었다는 삼국사기(1245)의 기록과 어울린다. @동명왕묘
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 0905 髙麗계승론의 모순
평양은 위만조선으로 87년, 낙랑군으로 420년 그리고 고려로 355년을 지냈다. 그 이후 229년 동안은 역사 무대에서 사라졌다. 905년에 평양이 다시 역사 무대에 올라왔을 때, 기록은 남아 있었으나 그 기록과 공간의 연결은 끊어져 있었다. 이를 다시 연결하는 과정에서 많은 착오가 발생했다. 추모왕의 활동이 평양 을밀대 아래에서 이루어졌다거나, 추모왕의 무덤이 평양 용산에 있다거나, 고국원왕의 황성이 평양 목멱산에 있었다거나 하는 이야기들이다.
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